[ 특집 ] 2003년10월09일 제479호
참아라, 허벅지 쿡쿡 찔러라
사병의 ‘성욕’을 허용치 않는 대한민국 군대… ‘군인=제복 입은 시민’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군대에선 잘 참고 나가서 풀어라.” 대한민국 군대에 사병의 성욕은 없다. 섹스 문제는 “사병=군복 입은 시민”으로 인식 전환하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다. 왜곡되는 사병의 성의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욕(情慾)을 떨쳐내려는 소망과 달리 정욕이 더욱더 자리잡는다고 느끼더라도 절대로 그것들을 떨쳐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단지 그것을 한번에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말을 잘 다루는 마부라 할지라도 단 한번에 고삐를 잡지 못하며 수없이 고삐를 잡아 결국 말을 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욕망을 한번에 이겨내지 못했더라도 계속해서 떨쳐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노력할 때 정욕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

사진/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들. 이등병과 일등병까지는 성욕을 느낄 여유도 없는 편이다.(한겨레 이정용 기자)
부대 밖에서 알아서 해결하라?
톨스토이의 말처럼 인간의 성적 본능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하기 힘들다. 오죽하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성욕에 대한 투쟁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말을 남겼을까.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이럴진대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의 성적 욕망은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들끓게 마련이다. 60만명가량의 젊은 병사들이 2년 넘게 징집돼 군복무를 하고 있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출퇴근을 하는 부사관이나 장교들과 달리 24시간 부대 안에서 먹고 자야 하는 병사들의 성은 어떤 모습일까.
애초 문제의식은 ‘국가가 징집한 20대 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는 게 정당한가‘ ‘병영생활이 병사들의 성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였다. 하지만 취재는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딪혔다.
먼저 군 당국은 병사들의 성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올 들어 부대에서 잇달아 성추행·자살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국방부는 군기강 강화 특별종합대책으로 △병영 안 사고를 일으킬 만한 문제를 찾아내고 △지휘관이 직접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고 △익명의 설문조사를 포함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성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을 내놓았다. 군은 병영 안 성추행 방지 등 사고예방 차원에서 접근할 뿐, 병사들의 성문제에 대해 ‘부대 안에서는 사고 치지 말고 참고 부대 밖에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었다.
군 관계자는 “징집제 하에서 다양한 계층과 성격의 병사들이 외부와 단절된 좁은 공간에서 통제된 내무생활을 한다.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성생활의 권리까지 보장해주기 힘들다. 무엇보다 구타 근절이나 병영생활 여건처럼 예산 투입과 교육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사안과 달리 해결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적 분위기도 병사들의 성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의 군 간부와 선임병의 질책과 폭언·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병사에 대해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은 이런 사회분위기를 반영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군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군기교육이나 질책은 필요불가결하고 폭행이나 폭언이 있더라도 지속적이거나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군인으로서 이를 극복하고 자살과 같은 극단적 방법이 아닌, 상부에 시정을 요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폭행이나 폭언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대한민국 군인’에게 섹스할 권리까지 인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여성 운동가들은 ‘국가가 20대 병사들을 모아놓고 성적 욕망을 억압하는 게 정당한가’라는 발상은 남성 위주 시각이란 반응을 보였다.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남자의 성욕은 배설해야 한다’는 논리로 종군위안부를 만든 것처럼, 자칫 이런 문제 제기가 병사들의 매매춘 등 일탈된 성행동을 합리화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성매매 한 적 있다’ 20%
병사들의 실태부터 알아보기 위해 10월 초 이틀 동안 서울 시내 터미널들과 역에서 휴가 나온 병사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병사들이 성적 욕구를 느끼지만 꾹 참거나 운동을 하면서 푸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 복무하면서 성적 충동이나 욕구가 일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가끔 있다’는 응답이 42%(84명)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 중 5명은 ‘매우 많다’(거의 매일), 15명은 ‘많다’(2~3일에 한번)고 대답해 전체 10%(20명)는 성적 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비해 ‘별로 없다’(61명·30%), ‘거의 없다’(40명·20%)는 응답자의 절반가량이었다.

사진/ 여자친구와 번화가를 거니는 병사. 병사들은 운동과 인내력으로 건전하게 성욕을 참고 산다.(류우종 기자)
응답자를 계급별로 보면 이등병과 일병 가운데는 ‘성적 충동을 느낄 때가 매우 많다’는 응답자가 한명도 없는 반면, 상병과 병장은 5명으로 조사됐다. ‘성적 충동이 일 때가 많다’는 응답도 이등병과 일병은 모두 4명이었고, 상병과 병장은 11명이었다. ‘가끔 성적 충동이 인다’고 대답한 이등병과 일병은 25명이었고, 상병과 병장은 59명이었다.
병사들의 성욕은 철저하게 ‘짬밥순’으로 나타났다. 단적으로 설문조사에 응한 한 이등병은 “부대에서 자위행위를 하려고 해도 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성충동이 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냥 참는다’(61명·37%)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운동을 열심히 한다’(54명·33%), ‘외출·외박 때까지 참는다’(24명·14%) 등의 순이었다.
‘언제 성충동이 생기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62명 중 가장 많은 70명(43%)이 ‘텔레비전에서 야한 장면을 본 뒤’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취침시간’(21명·13%), ‘부대원끼리 음담패설을 하고 난 뒤’(17명·10%), ‘외출하고 부대로 돌아온 뒤’(16명·10%), ‘힘든 훈련을 마친 뒤’(8명·5%) 등의 순서였다.
병사들은 성적 충동의 강도에 대해 ‘참을 만하다’(58명·33%), ‘잠시 생각이 나다 잊혀진다’(54명·31%), ‘금방 잊고 업무에 열중한다’(39명·22%)고 대답해 응답자의 86%가량은 ‘참을 만하다’고 대답했다. ‘참기 힘들다’는 응답은 13%가량이었다.
한편, ‘입대 이후 돈을 주고 매매춘을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20%(38명)가 ‘있다’고 대답한 반면, 대다수(150명·80%)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휴가 나온 병사들은 군복 차림으로 사창가부터 찾는다’는 일부의 선입견과 달리 대다수 병사들은 비교적 건전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사들에게 부대에서 성적 욕구를 해소할 방법을 자유롭게 적어달라고 하자 ‘운동을 열심히 하자’와 ‘외출·외박 정례화 ’‘ 자위행위를 할 수 있게 화장실을 깨끗하게 해달라’ 등이 나왔다. 몇몇 병사는 ‘방법이 없다’ ‘전역해야 해결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한편, 혈기왕성한 병사들을 지도하는 일선 부대 간부들의 고충도 만만찮다. 한 중대장은 “군대 갔다온 사람이면 알겠지만 군대에서는 시간만 나면 축구를 한다. 특히 공휴일이면 아침 먹고 축구하고, 점심 먹고 또 축구하고, 저녁 먹고 족구하는 등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계속 운동시키는 경우도 있다. 병사들에게 운동을 시키는 목적은 체력단련과 엉뚱한 생각을 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평소 병사들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가 외출이나 외박 등을 적절하게 활용해 바깥 바람을 쐬게 해준다”고 말했다. 90년대 말부터 각 부대에서 댄스, 사물놀이, 영어회화, 만화, 한문, 연극. 컴퓨터, 보디빌딩 등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것은 부대관리 차원에서 자기주장이 강한 신세대 병사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사진/ 영국군은 병사들이 애인과 함께 병영에서 밤을 같이 보내도록 허락하고 있다. 사진은 영국군이 배구를 하는 모습.(GAMMA)
애인과의 잠자리 허용한 영국군
한편 외국에서는 병사들의 성문제를 ‘평화시 병영 내에서 군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차원에서 취급한다. 지난해 3월 영국군 대변인은 미혼 영국 군인들이 자신의 섹스 파트너와 함께 군 병영에서 밤을 같이 보내도록 허락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영국군 대변인은 “평화시 병영 내에서 군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해왔으며, 이번 정책은 우리가 몇몇 규칙들을 어떻게 완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예다. 군인도 한 인간이며, 따라서 그들의 사생활은 그들 자신의 문제”라고 말했다.
영국군 당국은 비어 있는 기혼 장교 막사 이용 외에도 미혼 장병들이 주말에 애인과 함께 지내기 위해 예약할 수 있는 다수의 ‘복지관’을 짓고 있으며, 적절한 구내시설 내에서의 음주도 허용할 예정이다. 영국군은 이 정책과 12주 신병 교육에 대한 규칙 완화로 신병들의 복무 중도 포기를 방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국군은 징병제인 우리와 달리 모병제다. 한국군과 영국군이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군 인권에 대한 접근 시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병사들의 성문제는 단순히 병사들에게 섹스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게 아니라, 군에서의 인격적인 삶의 보장이라는 확대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병사들을 징집한 국가에게는 사고예방 차원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휴식하고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시설이나 제도 등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최근 불거진 각종 군 관련 사건·사고의 근본 문제는 군 당국이 군인 개개인을 일반 시민과 같이 인권과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로 보지 않는 데 있다. 사회 변화에 맞추어 군 당국이 병사들을 값싼 전투력이 아니라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기본권을 누릴 권리가 있는 ‘군인=제복 입은 시민’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꼭 용주골로 가셔야 했나요?
참아라, 허벅지 쿡쿡 찔러라
사병의 ‘성욕’을 허용치 않는 대한민국 군대… ‘군인=제복 입은 시민’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군대에선 잘 참고 나가서 풀어라.” 대한민국 군대에 사병의 성욕은 없다. 섹스 문제는 “사병=군복 입은 시민”으로 인식 전환하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다. 왜곡되는 사병의 성의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욕(情慾)을 떨쳐내려는 소망과 달리 정욕이 더욱더 자리잡는다고 느끼더라도 절대로 그것들을 떨쳐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단지 그것을 한번에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말을 잘 다루는 마부라 할지라도 단 한번에 고삐를 잡지 못하며 수없이 고삐를 잡아 결국 말을 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욕망을 한번에 이겨내지 못했더라도 계속해서 떨쳐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노력할 때 정욕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

사진/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들. 이등병과 일등병까지는 성욕을 느낄 여유도 없는 편이다.(한겨레 이정용 기자)
부대 밖에서 알아서 해결하라?
톨스토이의 말처럼 인간의 성적 본능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하기 힘들다. 오죽하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성욕에 대한 투쟁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말을 남겼을까.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이럴진대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의 성적 욕망은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들끓게 마련이다. 60만명가량의 젊은 병사들이 2년 넘게 징집돼 군복무를 하고 있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출퇴근을 하는 부사관이나 장교들과 달리 24시간 부대 안에서 먹고 자야 하는 병사들의 성은 어떤 모습일까.
애초 문제의식은 ‘국가가 징집한 20대 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는 게 정당한가‘ ‘병영생활이 병사들의 성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였다. 하지만 취재는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딪혔다.
먼저 군 당국은 병사들의 성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올 들어 부대에서 잇달아 성추행·자살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국방부는 군기강 강화 특별종합대책으로 △병영 안 사고를 일으킬 만한 문제를 찾아내고 △지휘관이 직접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고 △익명의 설문조사를 포함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성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을 내놓았다. 군은 병영 안 성추행 방지 등 사고예방 차원에서 접근할 뿐, 병사들의 성문제에 대해 ‘부대 안에서는 사고 치지 말고 참고 부대 밖에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었다.
군 관계자는 “징집제 하에서 다양한 계층과 성격의 병사들이 외부와 단절된 좁은 공간에서 통제된 내무생활을 한다.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성생활의 권리까지 보장해주기 힘들다. 무엇보다 구타 근절이나 병영생활 여건처럼 예산 투입과 교육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사안과 달리 해결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적 분위기도 병사들의 성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의 군 간부와 선임병의 질책과 폭언·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병사에 대해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은 이런 사회분위기를 반영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군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군기교육이나 질책은 필요불가결하고 폭행이나 폭언이 있더라도 지속적이거나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군인으로서 이를 극복하고 자살과 같은 극단적 방법이 아닌, 상부에 시정을 요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폭행이나 폭언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대한민국 군인’에게 섹스할 권리까지 인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여성 운동가들은 ‘국가가 20대 병사들을 모아놓고 성적 욕망을 억압하는 게 정당한가’라는 발상은 남성 위주 시각이란 반응을 보였다.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남자의 성욕은 배설해야 한다’는 논리로 종군위안부를 만든 것처럼, 자칫 이런 문제 제기가 병사들의 매매춘 등 일탈된 성행동을 합리화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성매매 한 적 있다’ 20%
병사들의 실태부터 알아보기 위해 10월 초 이틀 동안 서울 시내 터미널들과 역에서 휴가 나온 병사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병사들이 성적 욕구를 느끼지만 꾹 참거나 운동을 하면서 푸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 복무하면서 성적 충동이나 욕구가 일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가끔 있다’는 응답이 42%(84명)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 중 5명은 ‘매우 많다’(거의 매일), 15명은 ‘많다’(2~3일에 한번)고 대답해 전체 10%(20명)는 성적 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비해 ‘별로 없다’(61명·30%), ‘거의 없다’(40명·20%)는 응답자의 절반가량이었다.

사진/ 여자친구와 번화가를 거니는 병사. 병사들은 운동과 인내력으로 건전하게 성욕을 참고 산다.(류우종 기자)
응답자를 계급별로 보면 이등병과 일병 가운데는 ‘성적 충동을 느낄 때가 매우 많다’는 응답자가 한명도 없는 반면, 상병과 병장은 5명으로 조사됐다. ‘성적 충동이 일 때가 많다’는 응답도 이등병과 일병은 모두 4명이었고, 상병과 병장은 11명이었다. ‘가끔 성적 충동이 인다’고 대답한 이등병과 일병은 25명이었고, 상병과 병장은 59명이었다.
병사들의 성욕은 철저하게 ‘짬밥순’으로 나타났다. 단적으로 설문조사에 응한 한 이등병은 “부대에서 자위행위를 하려고 해도 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성충동이 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냥 참는다’(61명·37%)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운동을 열심히 한다’(54명·33%), ‘외출·외박 때까지 참는다’(24명·14%) 등의 순이었다.
‘언제 성충동이 생기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62명 중 가장 많은 70명(43%)이 ‘텔레비전에서 야한 장면을 본 뒤’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취침시간’(21명·13%), ‘부대원끼리 음담패설을 하고 난 뒤’(17명·10%), ‘외출하고 부대로 돌아온 뒤’(16명·10%), ‘힘든 훈련을 마친 뒤’(8명·5%) 등의 순서였다.
병사들은 성적 충동의 강도에 대해 ‘참을 만하다’(58명·33%), ‘잠시 생각이 나다 잊혀진다’(54명·31%), ‘금방 잊고 업무에 열중한다’(39명·22%)고 대답해 응답자의 86%가량은 ‘참을 만하다’고 대답했다. ‘참기 힘들다’는 응답은 13%가량이었다.
한편, ‘입대 이후 돈을 주고 매매춘을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20%(38명)가 ‘있다’고 대답한 반면, 대다수(150명·80%)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휴가 나온 병사들은 군복 차림으로 사창가부터 찾는다’는 일부의 선입견과 달리 대다수 병사들은 비교적 건전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사들에게 부대에서 성적 욕구를 해소할 방법을 자유롭게 적어달라고 하자 ‘운동을 열심히 하자’와 ‘외출·외박 정례화 ’‘ 자위행위를 할 수 있게 화장실을 깨끗하게 해달라’ 등이 나왔다. 몇몇 병사는 ‘방법이 없다’ ‘전역해야 해결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한편, 혈기왕성한 병사들을 지도하는 일선 부대 간부들의 고충도 만만찮다. 한 중대장은 “군대 갔다온 사람이면 알겠지만 군대에서는 시간만 나면 축구를 한다. 특히 공휴일이면 아침 먹고 축구하고, 점심 먹고 또 축구하고, 저녁 먹고 족구하는 등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계속 운동시키는 경우도 있다. 병사들에게 운동을 시키는 목적은 체력단련과 엉뚱한 생각을 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평소 병사들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가 외출이나 외박 등을 적절하게 활용해 바깥 바람을 쐬게 해준다”고 말했다. 90년대 말부터 각 부대에서 댄스, 사물놀이, 영어회화, 만화, 한문, 연극. 컴퓨터, 보디빌딩 등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것은 부대관리 차원에서 자기주장이 강한 신세대 병사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사진/ 영국군은 병사들이 애인과 함께 병영에서 밤을 같이 보내도록 허락하고 있다. 사진은 영국군이 배구를 하는 모습.(GAMMA)
애인과의 잠자리 허용한 영국군
한편 외국에서는 병사들의 성문제를 ‘평화시 병영 내에서 군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차원에서 취급한다. 지난해 3월 영국군 대변인은 미혼 영국 군인들이 자신의 섹스 파트너와 함께 군 병영에서 밤을 같이 보내도록 허락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영국군 대변인은 “평화시 병영 내에서 군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해왔으며, 이번 정책은 우리가 몇몇 규칙들을 어떻게 완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예다. 군인도 한 인간이며, 따라서 그들의 사생활은 그들 자신의 문제”라고 말했다.
영국군 당국은 비어 있는 기혼 장교 막사 이용 외에도 미혼 장병들이 주말에 애인과 함께 지내기 위해 예약할 수 있는 다수의 ‘복지관’을 짓고 있으며, 적절한 구내시설 내에서의 음주도 허용할 예정이다. 영국군은 이 정책과 12주 신병 교육에 대한 규칙 완화로 신병들의 복무 중도 포기를 방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국군은 징병제인 우리와 달리 모병제다. 한국군과 영국군이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군 인권에 대한 접근 시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병사들의 성문제는 단순히 병사들에게 섹스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게 아니라, 군에서의 인격적인 삶의 보장이라는 확대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병사들을 징집한 국가에게는 사고예방 차원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휴식하고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시설이나 제도 등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최근 불거진 각종 군 관련 사건·사고의 근본 문제는 군 당국이 군인 개개인을 일반 시민과 같이 인권과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로 보지 않는 데 있다. 사회 변화에 맞추어 군 당국이 병사들을 값싼 전투력이 아니라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기본권을 누릴 권리가 있는 ‘군인=제복 입은 시민’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꼭 용주골로 가셔야 했나요?
'여성 인권으로 > 성 인식 성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혼남 60% “성차별 경험” (0) | 2003.10.19 |
---|---|
[포르노그라피폐해] `원조교제' 여고생성관계뒤 살인 (0) | 2003.10.16 |
[사생활인가?처벌대상인가?]의사·공무원 70쌍 '스와 (0) | 2003.10.15 |
[문화일보] 젊은여성 성병 급증 매독 3년새 96%늘어 (0) | 2003.09.30 |
[여성신문] [반 기지운동] 군사주의에 맞서 손잡은 여성의 힘 (0) | 2003.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