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별 언론 기사 4

우리가 잊은 할머니들…국내 첫 커밍아웃 이남님, 타이에서 가족 찾은 노수복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03616.html 우리가 잊은 할머니들…국내 첫 커밍아웃 이남님, 타이에서 가족 찾은 노수복 [토요판] 커버스토리 / 우리가 잊어버린 할머니들 www.hani.co.kr 1927년 전라남도 승주군 출생 1945년 만17살, 마을에서 동네친구 박순단과 함께 버마 랑군으로 강제동원 마을에서 면직원과 구장이 "정신대는 군인들의 밥과 빨래를 하거나 군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 "월급이 40원"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부모가 솔깃해 자신을 구장에게 내준 것인데, 당시 포로감시원 등 군속으로 동원된 이들이 집으로 50원 월급을 보내왔던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수에 도착하니 100여명의 여성들이 ..

우리가 잊은 할머니들…국내 첫 커밍아웃 이남님, 타이에서 가족 찾은 노수복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03616.html 우리가 잊은 할머니들…국내 첫 커밍아웃 이남님, 타이에서 가족 찾은 노수복 [토요판] 커버스토리 / 우리가 잊어버린 할머니들 www.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우리가 잊어버린 할머니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인 첫 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의 통설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의 중요한 외교적 현안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 사실 이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해 왔..

[노수복] 1984년 고국 방문

1921년 경북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 안심부락 출생 1942년 21살 부산 영도다리 근처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중 강제연행, - 부산 - 40일 항해 끝 에 싱가포르에 도착, 이후 싱가포르 등 버마전선 중심으로 1944년 태국으로 이동 1945년 초 남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 패잔병과 함께 연합군의 포로가 됨 , 유엔군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다 탈출, 태국에 거주 1984년 3월13일 에 보도(가족과 TV화면 상봉). 도 ‘한국말을 잊은 한국의 할머니’라는 제목으로 수기 1984년5월 고국 방문 1988년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 인터뷰 1991년 고국 방문 2011년 고국방문 2011. 11. 4 태국에서 사망 위안부 피해자 故노수복 할머니 고국서 잠든다 Par 김효정 | 연합뉴스 – dim. 27 n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