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문제 언론 자료 창고/2003-2006

日帝 위안부 강제징집 확인 문서발굴 의미

윤명숙 2004. 7. 6. 03:24
日정부 범죄개입 드러나
日帝 위안부 강제징집 확인 문서발굴 의미
 1941년 8월 11일 하차기씨에 대해 유언비어 유포죄로 금고 4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당시 대구지방법원의 판결문 원본.
세계일보 취재팀에 의해 발굴된 판결문 기록은 그동안 피해자들의 증언만으로 알려졌던 일본의 종군위안부 강제징집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이 조선 전역에 걸쳐 비밀리에 조사한 명단을 이용, 부녀자를 징집해 갔고 이를 발설하는 사람들에게는 군 형법을 적용해 형사처벌까지 해가며 탄압한 사실이 자세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개입했다는 기록이 일본에서는 몇차례 발굴됐지만, 국내에서 발굴되기는 전무해 향후 진상규명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 부녀자 징발 명단 존재했다=판결문은 일본군이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12세에서 40세 이상의 조선인 처녀와 과부 등 부녀자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총독부 입김은 하부 행정단위인 리 단위까지 파급됐고 구장(이장)이 중심이 돼 종군위안부 징발에 앞장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군은 1931년부터 45년 사이 20만명의 부녀자들을 조선과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강제 징집해 갔는데 이 가운데 15만명이 조선인 부녀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결문에서 드러난 또 다른 사실은 조선총독부가 종군위안부 징집 사실을 발설한 사람에 대해 군 형법을 적용, 실형을 선고하는 등 철저하게 여론을 통제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 정부차원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적극 개입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민간인들에 대해 일반 형법이 아닌 군 형법을 적용해 실형을 선고한 것은 형량을 높여 가중처벌함으로써 공포 분위기를 조성, 조선에서의 종군위안부 징집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왜, 내 딸을 조사표에 넣었나”=이번에 발견된 9건의 판결문은 당시 암울했던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종군위안부 징집에 대해 조선인들이 가지고 있던 불안감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일제의 탄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유언비어 유포죄로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전남 영암군의 송명심씨는 마을 구장이 부녀자들을 조사해 갈 때 이웃 주민 이모씨가 자신의 딸을 명단에 기재하도록 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씨에게 “무슨 까닭으로 조사표에 내 딸을 기재케 했느냐. 황군 위문을 위해 12세 이상 40세 이하의 처녀와 과부를 모집해 만주에 보낸다고 하는데 이번 조사도 그것 때문이 아니냐”며 따지다 기소돼 처벌을 받았다.

또 경북 영천군에서 주류판매업을 하던 하차기씨도 유언비어 유포죄로 금고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씨는 이웃 주민에게 “최근 당국이 미혼 처녀를 모집해서 전쟁 중인 일본군 장병을 위해 취사 또는 위안을 하려는 계획이 있으니 빨리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전남 장흥지원의 백용갑씨도 “순천에서는 조선인 처녀들이 일본군에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결혼을 많이 시키고 있다”는 말을 했다가 금고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밖에도 장흥지원의 한만옥·이운선씨 등 6명도 종군위안부 징집 사실을 발설한 죄로 감옥살이를 했다.

이와 관련,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인 일제시대 판결문이 40만건에 달해 이와 비슷한 내용의 종군위안부 기록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차원의 조사 작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

/specials@segye.com   2004.07.02(금)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