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시사저널/문화비평] 두 교수님의 ‘양계장 촌극’ (진중권) |
“정신대를 비롯한 일제의 만행은 일본인만이 아니라 조선인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발언은 ‘일본이나 친일파의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부터 자성할 일’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저는 일본군 성노예가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였다는 일부 언론에서 유포하고 있는 발언이나 그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토론 과정에서 직접 행한 적이 없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올린 해명의 글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그 발언이나 그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정신대를 강제 징집했다고 지적하는 상대의 주장을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이냐. 그것은 정신대 보고서 안 읽어보고 하는 말이다.” 이 발언의 문법적 형식은 분명히 징발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미군부대 기지촌을 예로 들지 않았던가. 이 예는 오직 ‘정신대=기지촌’이라는 등식이 있어야만 논변으로 기능할 수 있다. 교수씩이나 되는 분이 이치에 안 닿는 논법을 펼 리는 없고, 그의 발언은 정신대가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라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파문이 일자 그는 이렇게 해명했다. “일본군의 성노예제 조직과 관리의 전쟁 범죄가 그들만의 유일한 책임이 아니라 강제 동원 과정에서 협조하고 위안소를 위탁 경영한 한국인 출신 민간 업주, 위안소를 찾은 일반 병사들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 유태인부터 자성하고 독일의 책임 물어야 하나? ‘일제의 만행은 일본인만이 아니라(not only) 조선인의 책임이기도(but also) 하다.’ 위 문장이 이것을 의미한다면, 이는 하나마나한 소리다. 누가 그걸 부정하던가. 그 만행이 또한 조선인의 책임이기도 하기에, 그 책임 밝히자고 ‘친일 진상 규명’ 하자는 게 아닌가. 따라서 그것이 상대를 반박하는 논변으로 기능하려면 뭔가 다른 것을 의미해야 한다. 실제의 맥락에서 위의 문장은 ‘not~ but~’으로 기능했다. 즉 ‘일본이나 친일파의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부터 자성할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유태인 학살에 나치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유태인들이 수용소에서 나치에게 협력했다. 그렇다고 반성하는 독일인은 있는데 자성하는 유태인은 왜 없냐고 따져야 할까? 유태인부터 자성하고 독일의 책임을 물으라고 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장하다. 특히 이 말을 한 서울대 경제학과 이 아무개 교수 본인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리고 성폭력의 희생자를 모독한 자신의 역사 철학이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이 아닌지 ‘자기 성찰’을 할 필요가 좀 있겠다. 이번 사건은 학적 논쟁이 주책 없이 정치적 맥락 속에 들어오면서 빚어진 촌극이다. 사실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짜증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 짜증은 이 두 입장이 공유한 어떤 공통의 그릇된 전제에서 나온다. 남에게 ‘윤리적 반성’을 촉구하는 이교수, 이 참에 물의를 일으킨 자신의 역사 철학에 대해서나 ‘논리적 반성’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번 촌극의 클라이맥스는 양동휴 교수의 액션이었다. “나도 다 보았는데 지리멸렬이고 이영훈이 군계일학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학들의 틈에 낀 닭 두 마리가 보였다. “온갖 사료에 대한 분석을 스스로 나타내는 최고 수준의 학자임을 보였다.” 그 정도 논술 실력으로 행여 서울대 교수는 몰라도 서울대 신입생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네티즌들은 역사 교육을 다시 받든지 칼을 들고 와서 이영훈 선생과 나를 찔러라.” 내 참, 이런 말 한다고 칼로 목을 따대면 대한민국에 남아나는 닭이 없겠다. 양계장에서 ‘역사 교육’을 받고 싶지는 않고, 무식하게 칼질하는 것도 취향에 안 맞고. 그러니 두 분, ‘철들라’는 의미에서 그냥 뿅 망치로 꿀밤 한 대씩 맞고 끝내는 게 어떨까요? ㆍ진중권(문화평론가, 중앙대 겸임교수) | 777호 | ㆍ등록일 : 2004/09/07 14:05 | ㆍ수정일 : 2004/09/07 1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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