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아내 강제추행' 첫 유죄판결 | 2004/08/20 14:10 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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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광철기자= 아내를 성폭행하고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한 남편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유죄를 선고, 부부 사이에도 강제추행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최완주 부장판사)는 20일 아내를 강제추행하고 다치게 한 혐의(강제추행 치상 등)로 불구속 기소된 K(45)씨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자녀의 방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두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성추행해 다치게 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된다"며 "부부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이런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부부간 강제추행 인정 여부에 대해 "대법원이 1970년에 부부 강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번 사안은 부부간 강제추행의 경우로 대법원 판결에 저촉된다고 볼 수 없고 대법 판례가 강제추행까지 부정하는 취지더라도 30년 넘게 경과한 현 시점에서는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2002년 9월 기소된 K씨는 심리 과정에서 아내를 강제추행하거나 협박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거짓말탐지기 결과 거짓반응이 나오자 공소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재판부는 "술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렀고 피해자가 피고인과 가사사건 임의조정에서 500만원을 지급받은 뒤 즉시 피고인에 대해 형사고소를 취하한 점 등을 참작해 형 집행을 유예한다"고 덧붙였다.
K씨 부부는 지난 7월 서울가정법원에서 임의조정으로 재산 중 일부인 2억2천여만원을 아내에게 양도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혼이 성립됐다.
gc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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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강제추행 인정' 판결 의미> | 2004/08/20 15:18 송고 |
▲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 인정 =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결혼한 부부가 배우자의 성관계 요구에 응할 의무는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성적 결정권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성관계 요구에 응하지 않는 배우자에 대해 성관계를 강제할 수도 없다"며 판결 요지를 설명했다.
부부간 성적 결정권과 관련, 지난 69년 아내를 강간한 혐의로 남편이 기소된 전례는 있지만 이듬해 대법원은 "사건 당시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남편이 처를 강제로 간음했다고 해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 부부간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별거나 이혼 등으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지속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정상적인 부부인 경우엔 부부간 강간죄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대법원의 판단이었고 유사 사례로 남편이 기소된 전례도 찾을 수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는 부부간 갈등을 겪고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두 사람은 한 집에 동거하는 정상적인 부부였고 법원이 이런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도 강제추행이 성립한다고 판단, 아내의 결정권을 적극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그러나 "부부간의 단순한 신체접촉까지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고 밝혔다.
▲ 여성계 입장 =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우리 사회에는 여성을 남편의 재산으로 보고 혼인시 성관계 의무가 있다고 여겨왔고 부부간 일은 법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라고 일축해 왔다"며 "이번 판결은 여성인권이 유린돼 온 법 관행을 바로잡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남편들이 아내를 구타하는 등 폭행뒤 행동 중 12~13%가 성적 가해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며 "부부간 강간, 데이트 강간 등의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환영했다.
▲ 외국 사례 =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인정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
미국은 84년 결혼한 여성에게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는데 당시 법원은 "혼인 증명서가 남편이 아내를 강간할 수 있는 자격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기혼 여성도 미혼 여성과 같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판시했다.
영국에서도 94년 부부 강간을 처음 인정했고, 독일에서도 97년 형법을 개정하면서 법률상 아내가 강간죄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의 경우 우리 나라처럼 명문화하지 않았지만 혼인이 실질적으로 파탄난 경우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강간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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