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가 흘린 눈물은 붉은 피가 되어 방울 방울 흩어진다. 전쟁터로 끌려가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의 군홧발에 마구 짓밟혔던 소녀들의 이야기가 예술적인 만화로 태어났다.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 만화 기획전-지지 않는 꽃’ 앙코르 전에 황보가영(부천 심원중2) 학생기자가 다녀왔다. 제 41회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축제(1월 30일~2월2일)에서 화제를 모았던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의 국내 첫 순회 전시다.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입은 10대 소녀들이 기차에, 배에 실려 낯선 땅으로 끌려갔다. 어디에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모르는 채였다. 일본군은 일본·중국·싱가폴·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인도네시아·대만·한국 등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주둔한 곳마다 일본군 위안소를 만들었다. 그곳에 식민지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좁은 방에 가둬놓고 성노예로 학대했다. 군인들이 줄지어 학대에 가담했다. 소녀들이 고분고분하지 않다며 때리기도 일쑤였다. 강제로 아편을 주입해 중독자로 만들기도 했다. 죽어야만 들것에 실려 좁은 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군은 전쟁이 끝난 후 인권유린의 증거를 지우기 위해 소녀들을 죽이고 서류를 불태웠다. 운이 좋아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 중 몇몇이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몸을 팔았다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죄인처럼 숨어 지내야 했다. 일본 정부는 “증거가 없다” “스스로 원해서 몸을 판 창녀다”라는 망언으로 이들을 한번 더 짓밟았다. 용기를 낸 위안부 할머니들이 증언대에 섰다.
“내가 바로 증거다!”
그렇게 용기를 낸 할머니들 중 생존자는 이제 50명에 지나지 않는다. 평균 연령은 88세다.

영상전시실에선 앙굴렘 전시에 관한 뉴스와 다큐멘터리 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일본이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조직위원회에 압력을 넣어 전시를 방해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전시가 열리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일본은 한국 측의 기자간담회를 무산시키고, “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우익 만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맞불을 놓으려 했다. 하지만 이들의 전시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주최측의 판단에 따라 부스가 강제 철거되는 망신을 당했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만화를 전시하는 건 정치적이지 않느냐”는 일본 기자의 항의성 질문에 앙굴렘 조직위원회 아시아 담당 니콜라 피네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알리는 건 정치적인 게 아니다. 사실과 다르게 왜곡해서 알리는 게 정치적인 거다. 그래서 일본의 설치물은 철거했다.”
‘지지않는 꽃’ 앙굴렘 특별전엔 나흘간 1만7000여 명이 다녀갔다.
한국 앙코르전은 한국만화박물관을 시작으로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전국 순회 전시에 들어간다.

핏빛 눈물 흘리던 소녀의 그림 … 그 앞에서 떠날 수 없었죠
황보가영 학생기자의 취재 후기
전시를 보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www.hermuseum.go.kr)에서 위안부란 무엇인지, 위안소 생활은 어땠는지를 살펴봤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던 여성들을 뜻하는 말이다. 공장에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 공부를 가르쳐 주겠다, 간호사가 되게 해주겠다는 거짓말에 꾀인 사람들도 있고 강제로 끌려간 이도 있다. 뉴스에 여러 번 나와 심각한 문제인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다음날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지지 않는 꽃’을 찾았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최인선 작가의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다. 8장의 그림에 일본군과 어린 소녀의 짧은 대화를 달아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품에서 소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히 소녀가 흘리는 눈물이 핏빛 빗방울로 표현된 그림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서 있었다. 신지수 작가의 ‘83’이라는 작품은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봤다. 할머니가 점점 소녀로 변해가고 나중에는 친구와 함께 환한 미소로 달려간다. 83년이라는 인생을 일본에 맞서 싸워온 할머니에게 결국엔 희망이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할머니들이 멋있어 보였다. 자신이 위안부였다고 용기 내 고백하기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애니메이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보면서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주변인의 시선 때문에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눈물이 솟았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창피해 하고 숨겨야만 했을까. 슬펐다. 그리고 같은 역사가 반복될까봐 무섭고 두려워지기도 했다.
전시장 바깥엔 할머니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꽃잎 모양의 포스트잇에 쓰는 공간이 있었다. 다른 나라 언어로 된 글부터 어린 아이의 편지까지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다양한 메시지가 있었다. 할머니들이 보면 위로가 되고 힘이 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전시회는 일본의 압박 속에서 개최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왜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려 하지 않고 위안부 할머니들과 우리나라에 사과를 하지 않는지 말이다. 전시를 보고 나서 역사와 그 밖의 것을 많이 배워 내가 어른이 됐을 때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관람 정보>
한국만화박물관
‘2014 프랑스 앙굴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 만화 기획전 앙코르 전-지지 않는 꽃’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길주로1 한국만화박물관 1층 로비. 3월 16일까지(3월 3~7일, 10일 휴관). 오전 10시~오후 6시(오후 5시 입장 마감). 무료. 032-310-3042. ※3월부터 사본 전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그곳에 나는 없었다’
서올 세종로 76-15(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3월 1일~4월 13일. 매주 월요일 휴관. 오전9시~오후 6시(오후 5시 입장 마감). 무료. 02-3703-9200. ※원화 22점,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등 사료 전시.
글=이경희 기자
사진=우상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