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서만 벌써 열여섯 분이 돌아가셨다. 이제 63명이 남았고, 평균 나이가 86세나 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총리가 정치적 결단을 내려주셔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통계치를 인용하며 일본의 태도 변화를 강하게 촉구했다. 정상회담 직후 두 정상이 전통 사찰인 료안지(龍安寺)를 함께 산책하는 일정은 당초 예정된 25분의 절반으로 축소돼 팽팽했던 회담 분위기를 엿보게 했다.
팽팽했던 60분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왼쪽)가 18일 일본 교토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의미 있는 발언의 90%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할애했다. 교토=김동주 기자 zoo@donga.com |
○ 이 대통령, "제2, 제3의 평화비 세워질 것"
이 대통령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두고 "과거를 잊지 말되 미래로 가자"는 톤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이 대통령은 노다 총리에게 "일본 정부가 인식을 바꾸면 당장 해결할 수 있다. 법 이전에 국민 정서의 문제"라고 강조했고,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비(소녀상) 철수를 요청받았을 때는 "성의 있는 조치가 없다면 제2, 제3의 평화비가 세워질 것"이라고 받아쳤다. 평소 일본을 중국의 '거친 굴기(굴起)'를 함께 넘어갈 파트너로 여겨온 것에 비춰볼 때 이례적으로 강한 표현이었다.
이 대통령은 회담 이틀 전인 16일 청와대에서 최종 점검회의를 열어 발언 수위를 최종 조율했다. 이 자리에서는 △군위안부 문제는 양국 외교실무자가 아니라 한일 정상끼리 해결할 문제이며 △차가운 '법률의 문제' 대신 '한민족의 한(恨) 보듬기'로 접근하며 △일본이 강하게 원하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할 수 있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 대통령의 결심 배경
이 대통령이 한일 관계가 흔들릴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군위안부 문제를 적극 제기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과정은 복합적이다. 우선 8월 "정부가 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손놓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행정 부작위' 판결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이후 9월 뉴욕에서 노다 총리와 약식 회담을 했고, 10월 서울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했지만 이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제3국에서 열렸거나 손님으로 모신 회담에선 엄중한 문제를 꺼내기가 적절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교토 회담이 군위안부 할머니의 수요 집회가 1000회를 맞은 주말에 열렸다는 점도 세 번째 정상회담에서 작심 발언을 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이 대통령은 올 5월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참석차 원전 피해가 난 후쿠시마 지방을 방문했을 때 과거사 문제 제기의 필요성을 적잖게 느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일본 측이 '독도 이야기를 꺼내겠다'고 해 청와대를 실망시켰다"고 말했다.
○ 역대 정부는 현실의 한계 절감
위안부 문제가 정상외교 차원에서 처음 불거졌던 것은 노태우 정부 때다. 14일 1000회를 맞은 수요 집회도 이때 시작됐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당시 일본 총리는 서울에서 "과거 일본의 행위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반성과 사과를 한다"고 밝혔다. 그전까지 일본은 이른바 1965년 '김종필-오히라 각서'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식민지 배상요구는 완전 종결됐다는 주장을 반복했었다.
김영삼 정부는 진실 규명과 사과는 요구하지만 배상 청구는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일본에서 진실을 밝혀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과 영구임대주택 우선입주권 지급 등 경제적 배상은 정부가 맡았다.
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연행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교훈 삼겠다는 의지표명을 요구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그 대신 일본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이라는 민간기금을 만들어 편법이란 비판을 샀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상외교 차원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도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초강경 외교로 일본과 대립했으나 위안부 문제는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다는 평가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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