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소'제도・'위안부'문제/논쟁]이영훈 백분토론 사건

이영훈에 대한 초점 어긋난 비판 반대한다/아흐리만

윤명숙 2004. 9. 21. 16:34
이름  
   아흐리만 (2004-09-05 17:47:00, Hit : 314, 추천 : 7)
제목  
   이영훈에 대한 초점 어긋난 비판 반대한다
이영훈 교수는 대단히 용기 있는 지식인이거나, 대중을 상대로 한 화술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초점이 어긋난, 과도한 비판에는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는 주체의 판단을 집단에 귀속시키는 오류가 숨어있다. 즉 "무릇 한국인이라면 --로 말해야 한다."라는 사유의식이 숨어있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다루는 학문마저도 진영논리에 귀속시켜버리는 이 오류의 또 다른 버전으로는 "무릇 진보(좌파)라면 --이론에 동의해야 한다."가 있다. 둘다 논리적으로는 아무 근거가 없는 찌질이 짓이다. 가령 오마이뉴스의 충만한 민족주의는 이문열의 주장이 "일본 우파의 주장과 같다."고 비난하도록 하는데, 일본 우파의 주장과 같으면 그 자체로 오류인가? 담론의 외적 조건과 지형을 살피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자체로 무언가가 증명된다고 주장하는 '컨텍스트주의의 절대화'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영훈, 양동휴 두 경제사학자에 대한 반론은 대자보에 실린 홍기빈의 글에 잘 제시되어 있다.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8234§ion=section3 아마 이영훈의 주장은 홍기빈이 제시한 비판 방법 중 양적인 방법에 합치할 것이다. 즉 그는 종군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이 허위라고 인식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종군위안부 사례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다른 많은 경우에 민간기업의 아웃소싱을 통해 위안부가 발생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본의 개입없이) 민간기업의 차원에서 속임수나 사기에 의해 조선 처녀들이 희생당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에게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니거나, 묻더라도 조선인으로 이루어졌던 민간기업과 함께 물어야 한다고 이영훈은 생각할 것이다.


이영훈의 주장의 핵심은 친일파 문제는 학문적으로 연구할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이 게을리하는 면이 있고, 그런 자료의 축적없이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친일진상규명법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은 기본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친일진상규명법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한 개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물론 나의 경우 역사학자들이 그 분야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것에도 일종의 정치성이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영훈의 진단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친일진상규명법을 계기로 그러한 연구들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현재의 친일진상규명이 매우 불완전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민족주의의 분노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권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노무현이 정치적 실언을 하면 잘도 주제문 놀이를 해대던 노빠들이 초보적인 주제문 이해도 없이 이영훈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자신의 천박한 삶을 문제하는 이들에게 다양성과 공존주의를 가르치던 이들이 자신들의 유일한 미덕을 내팽개치고 이영훈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한 비난은 문제를 해결하는 건전한 방법도 아닐뿐더러, 집단의 개인에 대한 폭력이다.


또한 거기에는 자신들의 비도덕성에 대한 모종의 승인이 숨어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이렇다. 친일청산을 "적군에 붙은 놈 나쁜 놈"식으로 사고해서는 전제왕조국가의 권력다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한국 우파들의 주장의 요지는 그런 유아적인 사고를 벗어나 말초인간이 되어 개처럼 돈이나 벌자는 것이다. 이런 인간들이 전자를 이상으로 칭하고 후자를 현실이라 칭하며 싸우고 있는 조국의 현실에 암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쪽은 북한봐라, 민족 민족 하더니 못살잖아, 하고 한쪽은 민족정기 민족의 치부 운운하고. 이승연 사건때 오마이뉴스가 했던 짓을 보라. 그들의 말대로 이승연이 민족의 치부를 드러내서 잘못이라면,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청나라 시대 환향녀(고향에 돌아온 여자들이라는 뜻인데, 화냥년이라는 욕의 어원이다.)들처럼 자결이라도 하라는 것인가?


이런 한심한 대립을 벗어나고 싶을 때 친일청산을 바라는 이들이 우파들에게 해야 할 말은 친일청산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보편인권의 차원에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일본인과 친일파라는 주체가 아니라 그들의 행위다. 그러나 여기서 한국의 대중은 분열증에 시달린다. "자발적"과 "비자발적"의 구분이 그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대중들을 동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이영훈의 말대로) 그 어떤 자본주의 사회보다도 성매매를 용인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사창가에 비자발적으로 끌려온 매춘부의 숫자가 현존하는 종군위안부 생존자의 숫자만큼도 안 되겠는가. 이 집단적 비도덕성을 숨기기 위해 그들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갈퀴달린 손으로 처녀를 낚아채 가 군인들에게 던져버리는 실체로써의 일본국가 말이다. 이에 대한 약간의 의심이라도 품는 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자신과 일본제국주의를 편리하게 구별하기 위해서다. 이영훈의 잘잘못을 떠나서 이는 병리적인 현상이 아닌가. 그것은 자기자신의 비도덕성을 인지할 때 해소될 수 있는 것인데, 물론 대중들은 그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과 규준이 개입될 수 있다. 가령 종군위안부와 기지촌 여성은 강제성과 자발성이라는 점에서는 변별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깔끔하지 않다. 물리적 구속과 경제구조의 유인 사이에 어느 정도나 근원적인 차이가 나는지를, 아무도 말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심부 남성에 의한 주변부 여성에 대한 성적착취라는 점에선 동일한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다. 그러나 일단은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이 그 분류에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식의 세미나를 개최한 페미니스트들이 피해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었다. 나는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심경에 동조하며, 그들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관용의 대상이며 그들의 견해를 시대적 한계로써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페미니스트들이 잘못이라느니, 일제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이라느니, 따위의 천박한 주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진보좌파의 반응도 대중의 즉물적인 반응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차후 나온 민주노동당의 이영훈에 대한 일방적인 규탄 성명서도 그렇거니와, 국회의원 노회찬도 그렇다. 이영훈이 미군 위안부 운운했으면 그 문제도 차후 확실하게 조사하자고 대응하면 될 일 아닌가. 역사청산은 일본의 흔적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라 반인권적인 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회적인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역사청산이 현재적 의미가 있다는 말은 빛이 바래게 될 것이다.


종군위안부를 청산하려는 이들은 다음으로 산업화 시대에 국가가 부추긴 기생관광의 문제도 떠올려야 한다. 그런 식으로 성매매는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들어 갔으며, 현재에 이르러 9할의 남성과 1할의 여성이 참여하는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한쪽 눈을 질끈 감은 채 종군위안부에 대해 일본 탓만 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억압하는 것이다.


최근 어느 뉴스의 보도를 보니 일본정부는 수교협정 당시 피해자들에게 개별보상을 하려고 했으나, 한국정부가 이를 막고 대신 한국정부에 대한 배상액을 늘려달라고 했다 한다. 그러니까 수교협정 당시의 배상액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일본 우파들의 말에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인권범죄는 한국 정부가 주제넘게 대신 배상액 받고 죄를 사해준다고 해서 죄가 사해지는 일이 아니니, 일본의 말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가 국가가 성립하지 않았던 시절 억압당한 이 피해자들에 대해 어떠한 보상을 해줬는가를 묻는다면 결과는 참담할 수 있다. 배상액을 대신 떼먹은 국가가 한 일은 기생관광 외화벌이로 후배들을 양산한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몇년전 내가 들은 한국 정부의 피해자 보상 불가의 논거는 "한국이 성립하기 전의 일이라...."였다. 이런 것이야말로 일본 우파의 레퍼토리인데, 그게 옳다면 한국 정부는 왜 일본 정부에 징징거리는가. 일본이 '조선' 침공했지 언제 '한국' 침공했나?


마지막으로 이영훈 문제와는 좀 동떨어져 있지만 소위 '민족진보'들의 빈약한 역사의식을 규탄하면서 이 글을 맺도록 하자. 이 문제는 맨 처음에 언급한 주체의 판단을 집단에 귀속시키는 오류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몇몇 쪽글을 보니 몇몇 이들이 이영훈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보나마나 "무릇 진보좌파라면 내재적 근대화론에 찬성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재적 근대화론은 이미 박살이 난 상태라, 오늘날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정하려는 이들은 정서만 있고 이론은 없어 마땅한 진영을 형성하지 못하고 몇몇 가설만 세우는 정도이다. 국사책에서 '근대의 맹아' 어쩌구하며 조심스럽게 언급하는 것도 내재적 근대화론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팩트로 따지고 들면 조선 말기에 상업과 시장은 오히려 쇠퇴하는 추세에 있었다. 내재적 근대화론이든 근대화의 맹아이든 그다지 근거는 없다. 한국의 근대는 일본이 들여왔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사실이 정서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라는 명제를 "일본이 조선사람을 더 잘살게 해줬다."라는 명제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박정희식 근대화 이해에서 벗어나자. 나는 전자는 옳지만 후자는 오류라고 생각한다. 조선이 근대에 진입하지 않은 이유는 멍청해서가 아니라 당대의 재분배 경제만으로 충분히 인민들을 먹여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무리하게 근대를 찾아내려는 것이야말로 서양이 우연히 도달한 근대라는 체계를 역사의 성숙의 지표로 판정하는 오리엔탈리즘일 수가 있다. 참고로 요새 학자들의 견해는 근대라는 것이 성숙이 아니며, 우연에 우연을 거쳐 나타난 돌연변이지만, 이것이 한번 탄생하면 금세 다른 이들에게 전파되며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원래 경제체제가 변화되면 인민들은 살기 힘들다. 사냥하다가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한 이들은 정말이지 죽지 못해 그 짓을 했다. 산업화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조선이 더 괴로웠던 이유는 조선을 근대화시킨 일본도 근대화가 진척 중이었고, 그런 일본의 산업발전을 위해 조선의 농산품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일본의 경제권역에 들어간 이후 확실히 조선 민중의 삶은 어려워졌고, 그들은 이런저런 복잡한 논리보다는 "일제가 우리를 수탈했다."라는 명제에 더욱 깊이 공명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명제는 분명 옳은 면이 있다.


따라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긍정이 일제의 수탈이나 반인권적인 범죄를 정당화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것이고, 일본의 논리에 대한 대응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다.


문제가 복잡하면 복잡하게 사유를 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칼로 끊는 것은 임시방편의 해결책이며, 차후 억압된 문제가 돌아올 때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결단의 시기가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라도 매듭을 조심스럽게 풀어야 한다는 다른 사람들의 권고는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이영훈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이 불건강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런 점들을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