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문제 언론 자료 창고/2003-2006

-위안부 33명의 이름으로 나눔의 집 폐쇄를 요청하며-

윤명숙 2004. 3. 9. 08:44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올리는 호소문 | 무궁화회 할머니들의 진정서/성명서/호소문 2004/03/0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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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에게 올리는 호소문

           -위안부 33명의 이름으로 나눔의 집 폐쇄를 요청하며-


 위안부할머니들의 생존 사실이 역사에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 조계종에서 저희들을 가엽게 여겨 생존 위안부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개원해 주신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1992년 6월경으로 불교인권위원회에서 여성분과위원회 주관으로 정신대할머니를 위한 생활터전 마련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범불교적 차원에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2년 10월 30일 서울 혜화동에서 나눔의 집이 개원하던 날 많은 위안부할머니들은 조계종의 배려에 언젠가는 보은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던 의미있는 날 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단추가 잘못 매진 탓일까요. 아니면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의 복이 그것밖에 되지 않은 탓일까요. 나눔의 집을 준비할 당시 집행위원을 지낸 혜진이라는 사람이 나눔의 집 개원과 함께 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조계종과 우리 위안부할머니들간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조계종에서 정신대할머니들에게 필요한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쉼터로서의 휴식처 기능 그리고 할머니들간의 만남의 장소로 제공하겠다는 초발심은 개원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혜진원장의 사욕이 나눔의 집을 만들어준 조계종의 본뜻을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전국 각처에서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해 써달라고 답지된 그 많은 모금과 성금은 위안부할머니들의 눈을 가린채 혜진원장이 개인돈처럼 쥐락펴락하며 뒷주머니를 채우는데 혈안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 혜진원장의 행태를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이 몰랐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평생을 가슴에 한을 묻은채 눈치로만 살아온 우리들인데 왜 몰랐겠습니까. 다만 혜진이라는 원장을 보낸 조계종에서 나눔의 집을 마련해줬다는 고마운 마음에 입다물고 살았을뿐입니다. 한 번은 보다못한 박복순할머니가 혜진이의 급소를 쥐어잡고 혜진이의 추잡스런 일에 대해 따진적이 있었고 혜진이는 두 손들어 다시는 조신나게 행동하겠다며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 살고 있던 조영자라는 분이 하루는 조계종으로 가던 중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을 만나 한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얘기를 나누고 간 이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나눔의 집을 건립하는데 사용해 달라며 조계종에 희사하게 된 것입니다. 해서 95년 12월 9일 나눔의 집이 경기도 광주 퇴촌면 원당리 65번지로 이전해 현재의 나눔의 집이 뿌리를 내리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광주로 새로운 터전을 닦은 이후에도 혜진원장의 비행은 줄지 않고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 위안부할머니들을 앞세워 돈을 챙기는 일에 혈안이 됐습니다. 위안부할머니들을 데리고 국내를 돌며 정신대 증언무대를 열어 거기에서 들어오는 뭉칫돈을 챙기는가 하며 미국 등 외국까지 순회하며 정신대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게하는 명목으로 속칭 장사를 해댔습니다. 초기에 각종 모임에서 증언을 할 때만 해도 위안부할머니들은 가슴에 사묻힌 한을 풀고 일본놈들의 잔악한 만행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증언에 나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었다는 판단을 하게됐습니다. 아차 이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증언이 아니라 혜진이의 뒷주머니만 채우게하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터는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이 나나씩 둘씩 나눔의 집을 떠나게 됐던 것입니다.

 

 사실 혜진이는 뒷주머니만 챙겼던게 아니었습니다. 성욕도 채우고 있었습니다. 일본군들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은 위안부할머니들의 안식처라는 곳에서 그것도 스님이라는 작자가 버젓이 나눔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여자들을 골라 일본놈들과 같은 추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혜진이의 그같은 성폭력 행위에 대해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조계종에서는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 위안부할머니들이 혜진이의 그같은 행각으로 더 이상 있을 곳이 못된다며 떠나가게된 연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혜진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기자회견까지하며 원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던 2001년 2월이 아닌 그 보다 훨씬 전에 위안부할머니들은 나눔의 집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혜진이의 성폭행 사건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나눔의 집에 있었던 위안부할머니들 모두는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수년전부터 관계를 해온 혜진이와 총무가 왜 눈이 맞게됐는지 조계종에서는 알고 있는지요. 그것 역시 바로 나눔의 집에 답지하고 있는 각종 모금과 성금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형성되면서부터 였습니다.

 

 이쯤에서 조계종에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경찰이 사회적으로 큰 과실을 범했을 땐 경찰청장이나 또는 직속 장관이 옷을 벗는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조계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위안부할머니들이 수용돼 있는 시설에서 수년간 조계종에서 임명한 원장이라는 작자가 성폭력을 행사하고 간통을 저질러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일을 저질러 왔음에도 조계종에선 혜진이가 자진 사임하기로 한 원장직을 수리하는 일 이외에 대국민 사과 등 그 어떠한 입장표명이나 처분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고작 한 행위란 총무의 고발에 따라 혜진이가 양심고백을 하자 다음날인 2월 20일 한국여성단체 진상조사위 구성에 힘입어 대한불교조계종 내부감사에 들어건 것이 전부였습니다. 또 그 기간동안 무엇을 감사했는지 모르게 시일만 보내다 3월 7일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 이사회에서 혜진에 대한 사임을 수리하고 후임으로 비구니인 능광스님을 임명하는 것으로 사건 일체를 종결했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자비를 설파하는 불자들이 모인 불교계를 대표한다는 조계종에서 할 수 있는 일 입니까. 조계종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위안부할머니들은 지금까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도저히 조계종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혹 조계종에서는 위안부할머니들을 우습게 보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을 우습게 보고 한 행위인지 답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좀더 거칠게 말하겠습니다. 혜진이 사건을 전후로 위안부할머니들이 하나 둘씩 나눔의 집을 떠나게 된 이후 조계종에선 어떻게 했습니까.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어 놓고 정부로부터 월 수백만원에 이르는 정액보조금을 지원받기 위해서 최소한 위안부할머니 10명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보조금 지급 규정에 따라 중국에서 위안부할머니들을 수입해 머릿수를 채워 정부보조금을 타내는 일을 해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나눔의 집을 법인등록한 조계종의 본뜻 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게된다면 또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조계종에 적을 두고 있는 수 많은 불자들이 조계종을 떠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대다수 국민들은 조계종을 사회의 암적 존재로 규정하지 말라는 보장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실이 이러할 진데 조계종은 한 술 더 떠 이제는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한답시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세를 확장하려는 추태까지 보이고 있다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나눔의 집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땅 한 평 사기운동이 대체 무엇입니까. 말로는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 돌봐주는 손 길 없이 병마와 싸우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은 외면한채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땅 1평 갖기 운동은 분명 사기극인 것입니다. 설령 국민들이 속아 땅을 구입했다고 칩시다. 그 땅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사회복지법인의 주인인 조계종 바로 당신들의 재산이 아닙니까.

 

 게다가 나눔의 집에서 행하고 있는 장사놀이는 어쩌면 그렇게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와 꼭같을 수가 있습니까. 1998년 8월부터 개관한 ‘일본군위안부 역사관’이라는 것, 정대협에서 만든 ‘전쟁과 여성인권센터’와 마찬가지로 위안부할머니들의 증언록과 서적 등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 놓고 입장료를 받아 챙기며 수익을 올리는 일, 과연 역사와 국민앞에 부끄럽지 않습니까.

 

 이제 33명의 위안부헐머니들인 우리 세계평화무궁화회는 조계종에 권고 합니다. 더 이상 국민들을 기만하고 위안부할머니들을 팔아 배를 채우는 일 따위 접으십시오. 그리고 나눔의 집을 통해 지금까지 걷어들인 각종 모금과 성금액이 얼마인지 밝히고 그 모든 돈을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인계하십시오. 또 조영자씨가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해 희사한 숭고한 뜻을 받들어 나눔의 집 터를 관할 자치단체인 광주시에 반환해 광주시로 하여금 나눔의 집이 운영될 수 있도록 모든 재산권을 이 사회에 환원조치하길 촉구합니다. 혹 그것이 아깝다면 지금 당장 조영자시에게 땅을 돌려주고 나눔의 집 문을 닫으십시오. 위안부할머니 33인의 마지막 부탁이자 조계종에 고하는 마지막 경고입니다. 

                

    

                                 2004년 1월 

    태평양전쟁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의 모임 세계평화무궁화회 33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