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문제 언론 자료 창고/2003-2006

[오마이뉴스]이승연은 오지않고 기자들만 '북적'

윤명숙 2004. 2. 19. 12:59
이승연은 오지않고 기자들만 '북적'
[오마이뉴스 권박효원/윤지로 기자]
▲ 18일 제596차 수요집회는 어느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높은 관심속에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18일 낮 12시 서울 중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596차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수요집회에는 누드사진 파문을 일으킨 이승연씨가 참석키로 한 것으로 열려졌으나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18일 수요집회에서 한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해서 반성합니다." "힘내라! 힘내라!"

2월 18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 13명 뒤로 여성단체 회원과 대학생 50여명이 모였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러 나왔다가 집회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눈에 띄어 '이승연 누드파문'으로 집중된 국민적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승연씨가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를 보도하기 위해 몰린 취재진만 해도 약 100여명. 집회를 주최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관계자들은 약 40분간 진행된 집회 내내 기자들에게 "선(포토라인)을 넘어오지 말아주세요, 조금만 뒤로 물러서 주세요"라고 요청해야만 했다.

596차를 맞는 이날 수요집회의 내용은 여느 때와 큰 차이가 없이 구호와 발언, 성명서 낭독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집회장에는 "교활한 상술은 지옥으로! 따뜻한 양심은 할머니들 마음 속으로!", "여성의 성 상품화에 반대한다! 정신대 문제 해결하라!" 등 누드 파문과 관련된 피켓들이 눈에 띄었다.

어느 때보다 관심 높았던 596차 수요집회

마침 이날 오전 네티앙 엔터테인먼트에서 '이승연 누드'의 공개 시사회를 제안하고 나섰다. 여성단체와 시민들에게 직접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대협이나 피해 할머니들의 입장은 누드집 제작 중단 및 1차 촬영분 배포 금지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무릎꿇은 그 모습이 교활한 상술인가 연기인가를 우리는 지켜본다"는 피켓을 들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군자(79) 할머니는 이승연씨의 집회 불참에 대해 "저가 안 오고 베기겠냐, 이승연이나 회사는 사진 다 태우고 사죄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보겠다"고 말했다.

강주혜 정대협 부장은 "전면중단했다고 하고 나서 공개시사회를 연다는 것은, 결국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며 "제작 의도가 순수하다면 우리의 중단 요구를 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티앙 엔터테인먼트 측은 정대협 쪽에 공개시사회에 대해 전혀 공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강주혜 부장은 이승연씨에 대한 국민적 비난에 대해서는 "가슴이 아프다, 할머니들도 모두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부장은 "이씨가 책임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성 상품화의 피해자라는 측면도 있다, 이씨에 대한 성폭력적 언어는 자제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596차 수요집회에 참가한 일본 청소년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승연씨 참석 안해... 정대협 "무릎 꿇은 모습이 연기인가 지켜볼 것"

관심이 쏠렸던 이승연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날 집회에는 유난히 많은 참가자가 연대발언을 신청했다. 할머니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발언을 들었다. 안경을 벗고 손이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할머니도 있었다.

인터넷 '위안부누드 안티까페' 운영자인 박정옥(29)씨는 "평소에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라고 말문을 연 뒤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이러려고(울려고) 했던 게 아닌데"라고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고, 할머니들 자리에서 "힘내라"라는 격려가 터져나왔다.

박씨는 "이승연씨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오늘은 올 거라고 믿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할머니들을 기만하고 속인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위안부누드 안티까페'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취지로 1억 성금을 모으고 있으며, 오프라인 시위나 서명운동 등도 논의하고 있다.

한일 역사 재인식을 위한 양국 대학생들의 모임 '피스 로드' 소속 학생들도 "침묵은 금이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수요집회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무라마츠 쿠마코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 할머니의 마음인데 오히려 상처를 줬다"며 이승연 누드에 대해 "잘못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마이카 하쇼씨는 "올해로 4번째 수요집회에 참가하는데 상황이 전혀 변화하지 않아 화가 난다, 사람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날 집회장에서 만난 정대협 관계자들은 "수요집회에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온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으며 언론의 갑작스러운 관심에 오히려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강주혜 부장은 "12년 동안 이런 열기와 관심이 있었나"며 "할머니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슬프다"고 언론보도를 꼬집었고,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도 "보도진들이 많이 오니까 오히려 할머니들이 분노한다, 기자 여러분들이 할머니 마음을 알아주셔야 한다"고 호소했다.

윤미향 사무총장은 "취재진들이 누드보다는 우리 할머니들에게 관심이 있어서 왔다고 믿고 싶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다"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이승연 사과, 진정한 뉘우침인지 두고봐야"
수요집회에서 만난 사람들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수요집회에는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 유족, 대한 여한의사회 등 다양한 참가자들이 함께 했다.

일제 강점기 때 아버지가 강제징용된 후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희자씨(62)는 "이승연의 사과가 진정한 뉘우침에서 나온 것인지 또 다른 연기인지는 앞으로 더 두고봐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를 보러온 어린이도 있었다. 김민주(용정초2년)양은 야무진 목소리로 "할머니들에게 용기를 주지는 못할 망정 흉내를 낸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또래) 다른 친구들은 이번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집회에 참석한 일본인들은 "일본 언론은 이승연씨 관련 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야시타 토코모씨는 "16일 한국에 도착했는데 이전까지 이승연씨 관련 기사를 본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의 연구원이자 사진가인 야지마 쯔카사씨도 "일본신문은 이승연씨 기사를 한국의 국내 문제나 단신으로 처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수요집회를 취재하던 <요미우리신문>의 계열사인 일본TV의 한 기자는 "위안부와는 별도로 이승연이라는 탤런트가 누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을 주로 다룬다, 한국언론과 초점은 다르지만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여성단체 회원들은 이승연 누드파문에 대해 "개인 책임으로 몰고가서는 안된다", "연예인도 역사의식을 갖춰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양희석 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 대표는 "공인인 이승연씨가 백배사죄해야하지만, 개인에게 사건의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며 "이번 파문은 여성의 성 상품화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합쳐진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여한의사회의 회원인 고은광순씨는 "연예인도 역사의식과 상식은 갖추어야 한다"며 "이승연씨가 제작사의 기획에 휘말린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면책되어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역시 대한여한의사회 회원인 이유명호 씨는 "사람들은 그동안 TV나 동영상을 통해서 은근히 강간 등을 즐겨왔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누드가 나온 것도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책임론을 제기했다. /


/권박효원/윤지로 기자 (10zzun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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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8 18:13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