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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 버린 한국인 아버지를 찾아주세요”(경향)

윤명숙 2013. 6. 19. 00:06

“코피노 버린 한국인 아버지를 찾아주세요”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입력 : 2013-06-17 22:01:49수정 : 2013-06-18 07:10:32

 

필리핀 여성 6명, 첫 친자확인·양육비 청구 등 추진
“코피노 1만여명 추정… 대부분 집단 차별·가난 고통”

 

필리핀 여성 ㄱ씨(37)는 2010년 필리핀 세부의 한 술집에서 한 한국 남성을 만났다. 이 남성은 모 대기업 부장으로 ㄱ씨보다 나이가 23살가량 많았다. 그는 매월 하숙비와 생활비로 6500페소(약 17만원)를 제공하며 ㄱ씨와 1년가량 성관계를 이어갔다. ㄱ씨는 이 남성의 아이를 임신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이 사실을 알고도 한국으로 돌아가버렸고, 이후 다시는 ㄱ씨를 찾지 않았다. ㄱ씨는 시민단체를 통해 한국에 보낸 동영상에서 “딸이 아버지를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필리핀에 다시 오게 된다면 다시는 나와 딸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눈물을 흘렸다.

필리핀 여성 ㄴ씨(34)는 2006년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 첫째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았지만, 둘째 아이를 가졌던 2007년 11월 이 남성은 낙태를 권한 뒤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생활비 지원을 중단하고 ㄴ씨와의 연락도 끊었다. ㄴ씨는 혼자 힘으로 두 아이를 기르고 있다.

이들의 자녀처럼 필리핀에서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현지에서는 ‘코피노’라고 부른다. 시민단체들은 코피노가 현재 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아동여성보호단체 ‘탁틴내일’의 최영희 이사장(가운데)이 17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한국 남성의 필리핀인 성매매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아동·청소년 보호단체인 ‘탁틴내일’은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코피노 실태조사 보고 및 아동 성착취 근절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ㄱ씨 등 6명의 코피노와 그 어머니들이 한국인 아버지 찾기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현숙 탁틴내일 소장은 “아이의 아버지가 남겼던 사진이나 여권번호, 혼인증명서 등을 토대로 한국인 아버지의 소재를 파악한 뒤 법무법인 세종과 함께 친자 인지와 양육비 지원 소송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피노들이 공식적으로 아버지를 찾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필리핀에서의 한국 남성 성매매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돼 있는 상태다. 미 국무부의 ‘2010년 인신매매 실태보고서’는 한국을 아동 성매매 관광 송출국가로 지적하기도 했다.

코피노는 대부분 성매매를 통해 태어난다. 김용희 탁틴내일 간사는 “필리핀에서 한국 남성의 성매매는 골프여행 등과 겸하는 성관광, 지속적으로 성매매 여성을 만나는 ‘현지처’, 연애를 빙자한 유학생들의 성매매 형태로 나타난다”며 “특히 피임기구 사용을 기피하는 한국 남성의 성향은 코피노의 탄생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코피노가 태어나는 데는 필리핀 여성들의 가난과 낙태를 금지하는 가톨릭 규율도 함께 작용한다. 이렇게 태어난 코피노는 필리핀에서 집단따돌림 등 차별과 가난 속에서 자라고 있다.

동영상이 안 보이면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UjUkHda3cfI

최영희 탁틴내일 이사장은 “코피노의 아버지 찾기는 아동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보호하겠다는 의미와 함께 한국의 해외 성착취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필리핀과 한국 정부는 코피노와 성매매에 대한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성매매 업소 여성에게 보건카드를 발급하는 등 사실상 이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해외 성매매 사범에 대해 조건부 기소유예나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만 내릴 뿐이다.

아동 성착취 반대 국제시민단체인 ‘엑팟’의 간사 암히안 아부바는 “코피노가 결혼이 아닌 성매매를 통해 태어났지만, 출생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유엔 아동인권헌장을 따라야 한다”며 “성매매를 근절하는 법안 마련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코피노의 아버지 찾기가 자칫 한국 남성의 가정을 깨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김민영 사이버또래상담실 실장은 “필리핀 가정은 중요하지 않고, 성매수자의 가정은 중요하다는 생각도 차별 중 하나”라고 밝혔다.

▲ 코피노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필리핀에서 이르는 말로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172201495&code=94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