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문제 언론 자료 창고/2013.1.~2013.12

이명박 외교 5년, 김태효 前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게 묻는다(아사히 아시아 안테나)

윤명숙 2013. 2. 22. 02:48

이명박 외교 5년, 김태효 前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게 묻는다

February 22, 2013

인터뷰/하코다 데쓰야=箱田哲也 특파원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퇴임한다. 임기 중, 6∙25전쟁이 휴전된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 육지 포격을 당하는 등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에 빠졌고, 지난여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일∙한 관계도 단숨에 얼어붙었다. 40대라는 나이에 외교통일정책 책임자로 발탁돼 남북 극비접촉에도 임한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게 격동의 5년간에 대해 물었다.

-북한이 이달 중순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은, 1993년부터 10년간 한국이 햇볕정책으로 돈과 물자를 제공했을 때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했고, 이명박 정권 5년 사이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아도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짜놓은 일정대로 모든 것을 진행한 것이다. 융화정책도 압력정책도 효과가 없었다며 지적받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문제는 한국, 미국, 중국, 유엔이 일관된 조처를 하지 못하고 북한에 충분한 시간을 줘버린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기정사실화하는 최종단계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에 지금부터라도 변화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함께 주장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한국의 모든 정권은 남북문제 해결에 의욕적이다. 그러나 먼저 정치적 성과를 생각할 것인지, 한국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이끌 것인지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우리는 후자였다. 북한은 김 씨 일가가 3대에 걸쳐 통치하며 공포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평양 이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시되고 있다.”

“우리는 공존공영을 목표로 정권 초기에 (핵포기와 경제개방을 한다면 10년 안에 국민소득이 3000달러(약 330만 원)가 될 수 있도록 한국이 지원한다는) ‘비핵개방3000’을 북한에 전달하고, 그 후 포괄타협방식을 통한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그랜드바겐’을 제시했다. 그랜드바겐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기한을 설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일으켜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명박 정권의 강경책이 결과만 보자면 비극을 초래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었기 때문에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반복하고 군사도발을 한 것은 아니다. 북한으로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쓰러진 2008년 여름부터 사망할 때까지가 사상 최대의 위기였다. 내부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억지로라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시기가 이명박 정권과 겹친 것이다. 김 국방위원장이 건강했다면 적어도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이 대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물밑에서 비밀접촉도 진행됐다. 특히, 2009년 가을 싱가포르 회담에서는 정상회담 일정까지 대략 합의한 바 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이 실현한)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처럼 될 수 없을까 싶었는지 처음으로 평양에서 제안해왔다. 북한은 핵∙미사일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남한의 지원만 받고 싶다고 생각했고 우리가 바로 승낙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봤다. 우리는 내부에서 토론을 거듭한 결과, 과거와 같은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 그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태효 씨 자신도 2011년 5월에는 베이징에서 북한과 비밀접촉을 했고, 북한이 공식 매체에 이 사실을 폭로했다.

“두 차례 접촉하는 동안, 천안함 사건 등이 발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사죄 없이 지원은 있을 수 없다고 확실히 말했다. 북한은 어떻게 속일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싶어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북한의 최고수뇌부가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해 온 것은 이 두 번뿐이었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한편, 일∙한 관계도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지난해 6월에는 첫 일∙한 방위협력인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이 한국 여론의 반발로 서명식 직전에 보류됐다. 김태효 씨는 이 문제를 책임진다는 형태로 청와대를 떠났다.

“한국은 역사인식 측면에서 일본에 갖가지 감정을 안고 있으나 안전보장과 역사문제는 구별해서 생각해야 한다. GSOMIA는 한∙일 모두에게 필요하므로 지난해 처음으로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다는 양국의 인식이 일치했다. 그러나 연말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친일 세력 비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과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섞여 안타까운 결과가 돼버렸다. 협정은 체결돼야 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여름, 다케시마를 방문했을 때는 이미 청와대를 나온 상태였는데 어떻게 생각했나?

“GSOMIA 문제는 정말 안타깝다. 대통령은 몇년 전부터 (독도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GSOMIA가 체결됐다면 분위기가 바뀌어 방문을 단행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에 일∙한 관계는 순조로웠다. 그랬던 것이 재작년 한국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서 일본과의 외교교섭을 독촉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자 갑자기 냉각되기 시작했다.

“재작년 12월 교토에서 있었던 정상회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장시간 격론이 오갔다. 역사문제로는 이것이 마지막이자 최대의 현안이다. 그 후 일본정부도 이명박 정권 중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으며, 서로가 성의 있는 대화를 거듭했다. 일본 총리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일본정부가 보상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극소수의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실은 합의 직전까지 갔다. 일반적인 외교 루트와는 다른, 나와 일본 총리관저의 고위관리 사이에 특별한 루트가 있어 대부분 타결 직전까지 갔다.”

 

-합의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는 한∙일 외교 당국이 각자의 입장을 반영시키려고만 했기 때문에 상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GSOMIA 문제가 일어났다. 갑자기 체결이 좌절되면서 위안부 문제가 공중에 떠버렸다. 그대로 진행됐더라면 여름에 위안부 문제가 합의됐다고 발표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한∙일 관계도 개선됐을 것이다. 박근혜 신정부에 이 문제 해결을 일본 측이 다시 제안한다면 길은 열릴 것으로 생각하지만, 문제는 아베(安倍) 정권이다. 한∙일 관계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갖는 지위와 역할을 고려해 용기를 냈으면 한다.”

 

-일본정부에는 한국과 중국이 정치적으로 밀접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은 일∙미와의 긴밀한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일본과 미국은 국내총생산(GDP)과 군사력 규모에서 중국을 라이벌로 인식하고, 돌발적 행위에 대해서도 함께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할 테지만, 한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통일문제의 당사자로 일본과 미국의 입장과는 다르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남북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은 불가결하다. 북한의 도발에 한∙미∙일이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미와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항상 느끼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한국이 중단한 일∙한 교섭 재개보다 중국과의 교섭 개시를 우선시한 것도 정치적 판단인가.

“그것은 순수하게 경제, 통상의 문제다. 일본과의 협의에서는 구체적인 실행계획 등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지도부가 결정만 하면 빠르게 진행된다. 앞으로 일본의 결단에 따라 한∙일 교섭이 중국과의 교섭을 추월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일본에서는 앞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진행시키고 일본을 겨냥할 개연성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막고자 하는 미군을, 일본은 또 뒤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라는 것 등은 현실적인가? 한편으로 타이밍이 상당히 안 좋다. 한국에서는 지금 일본이 무슨 말을 해도 “군사 대국화를 위해 북한을 이용하고 있다”고 밖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일 간의 대화를 궤도에 올려, 한국 측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본은 안전보장 문제와 함께 주변 각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보유를 축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두 개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태효 前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지난해 7월 퇴임. 2009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상을 수상,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부교수로 재직 중. 45세.

인터뷰/하코다 데쓰야=箱田哲也 특파원

 http://asahikorean.com/article/asia_now/views/AJ201302220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