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발언이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은 지도 벌써 열흘이 넘어간다. 그 와중에 참으로 여러 가지 논점이 파생되었는데, 그 중 '자발적 성매매'라는 부분만 짚어볼까 한다. 이영훈 교수에게 분노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일본군 성노예=자발적 성매매'라는 발언을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했다고 믿으며 거기에 분노했다. '자발적 성매매'를 하는 창녀들과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성노예가 같을 수 없으며, 후자는 가슴아픈 우리 역사의 희생자들이지만 전자는 도덕성이 결여된 '더러운 년들'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발적 성매매'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답은 직업을 '자발적'으로 갖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우선 직업을 선택할 때 폭력에 의한 강제나 기만을 당하지 않는 환경에서 선택해야만 '자발적' 선택이라 부를 수 있다. 즉 인신매매나 유괴, 사기의 희생자가 되어 성매매를 하게 되는 경우 이것은 자발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두 번째, 이것이 더 중요한데, 최소한의 생계 유지가 가능한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거나 언제든 전업할 수 있는데도 성매매로 수입을 삼아야만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신감금이나 불법체포 등 비인권적인 장치가 개입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만약 '자발적 성매매'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한정된 경우, 그러니까 "절대적 빈곤이나 강제 혹은 기만에 따라 성매매를 시작하지 않았으며, 다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매매에서 수입을 얻기를 고수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성매매 업소들은 직접적으로 인신감금을 하지 않더라도 구조적으로 여성에게 빚을 지워 성매매 산업에서 탈출하는 것을 막고 있다. 또 대부분의 경우 성매매 여성은 다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성매매 여성들의 탈출 쉼터에서 여성들의 상처를 추스른 다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전직 훈련이다. 그렇다면, '자발적 성매매'를 하는 범주에 해당할 수 있는 여성은 "자의에 따라 다른 직업보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며,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지적 혹은 기능적) 능력이 있는 여성"이다. 도대체 이런 여성이 얼마나 될까. 성매매 피해여성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의 96%가 신체적인 위협이나 무기를 사용한 위협, 신체적 폭력, 강간의 피해를 경험했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볼 때, '자발적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란 허구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 특히 많은 남자들은 성매매 여성들이 대부분 자발적으로 그 일에 종사한다고 생각할까. 그 이유는,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들은 쾌락을(남성 성기를) 탐한다'는 환상. 포르노에는 강간이나 여성 학대의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하는 일반 여성들의 인식과는 달리, 대부분의 포르노는 자발적으로 쾌락을 탐하는 여성의 이미지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바로 남성의 환상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성매매 여성에게 분노하고 그들을 경멸한다. 남성의 성적 판타지 속에서 여성은 쾌락을 탐하는 존재이고, 남성은 쾌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존재, 여성에게 쾌락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능력의 과시'에서 쾌락을 얻는 존재다. 그런데 실제 성매매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돈을 주고 성을 매매해야 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여성은 남성이 얻을 수 없는 잉여 쾌락을 누린다고 남성들은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얻을 수 없는 잉여 쾌락을 가진 존재는 언제나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부도덕해 보인다. 바로 그 잉여 쾌락 때문에 성매매 여성은 남성의 판타지가 되며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 된다. 정확한 거래란 언제나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인데도 남성들은 '정확한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성매매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발적 성매매'의 핵심이며, 남성들이 비난하는 '음란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자발적 성매매'는 없다. 심지어 아까 이야기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자발적 성매매' 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 여성은 쾌락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얻으려고 성매매를 하는 것이다. 현실의 성매매에서 성은 분명하고 깔끔하게 돈을 따라간다. 여기서 여성의 '쾌락'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그러나 남성들은 성매매 여성이 쾌락을 누린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음란함'을 본다. 그리고 그 '음란함'에 대한 환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참여한다는 환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 남성들이 돈을 내고 사는 것은 '쾌락의 환상'이라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수많은 남성들이 사창가를 처음 경험할 때 그토록 환멸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