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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케이(kiri9411@chol.com) /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
들어가며: 존재해 온 세월만큼의 역사 커밍아웃과 아웃팅의 역사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성적소수자가 존재해 온 역사 그 자체를 뒤져야 할 것이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은 유사 이래로 어느 사회에건 존재해 왔다.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커밍아웃과 아웃팅의 역사라는 건 성적소수자 존재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열거한 것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된 건 불과 최근의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적소수자들이 비하적인 뉘앙스를 담지 않은 이름으로 스스로를 지칭할 수 있게 된 지 이제 십여년 째일 뿐이다. 그리고 이 십여년이라고 하는 세월은 성적소수자 인권 운동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시간의 흐름과 일치한다. 사람은 따로 따로 떨어져 있으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야만 변화의 단초를 잡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성적소수자 인권 운동의 맹아가 생겨나기 이전까지는 성적소수자들의 존재가 온전히 드러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 존재 증명을 온전히 하기 위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하고 그로부터 인권 운동은 시작되었으니까.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봐도 마찬가지다. 성적소수자 인권 운동의 시작은 비가시화 되어 왔던 이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을 갖고 시작되었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성적소수자에게 있어 커밍아웃이란 자, 여기서 커밍아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 커밍아웃은 coming out of the closet, 즉 벽장 속으로부터 밖으로 나오다란 구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여기서 '벽장' 은 그 자신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성적소수자들의 상황에 대한 가장 적확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는 수사로써의 은유를 뛰어 넘어 현실 그 자체를 곧장 지적하는 언어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벽장 속으로부터 밖으로 나온다는 말의 뒷부분에 주목해보자. 이 때 우리는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성적소수자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이성애중심주의의 억압성에 대한 대항의 의미를 갖는다는 데 모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적소수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억압 조건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빈부격차, 지역차, 학력차, 인종차, 장애유무, 등의 요건들은 한 개인안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그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이는 성적소수자들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대사회적으로 만천하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는 행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스로가 동성애자로 양성애자로 또는 트랜스젠더 등으로 정체화하는 것이나 이성이 아닌 상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거나 하는 행동 역시도 벽장 속으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가치의 경중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모두 귀중한 의지의 실천으로써 일맥상통하는 유의미함을 가진다. 모든 이들이 아주 '당연히도' 잠재적 이성애자로 간주되는 사회이기에 이성애자들의 경우 특별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이성애자가 아닌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며 사는 '없는 존재' 로서의 고통을 감내할 것인가 아니면 성적소수자에 대한 지독한 혐오가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뒤 그 혐오와 편견의 시선을 견뎌내며 지내는 고통을 감수할 것인가 사이의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고민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치는 삶의 와중에 어떤 식으로든 벽장 밖으로 나올 것을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했을 때 그러한 행동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편의상 커밍아웃의 차원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보면, '성적소수자 개인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내적 과정으로써의 커밍아웃' , ' 동성애자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양성애자가 좋아하는 동성의 상대에게, 트랜스젠더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고백하는 과정에서 필요불가결하게 수반되곤 하는 커밍아웃', '공통된 성정체성의 소유자들이 모인 공간에 들어갈 때의 커밍아웃', '친구 및 동료 또는 가족에게 하는 커밍아웃','매스컴을 통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대사회적으로 하는 커밍아웃' 등으로 나누어진다. 한국의 여성 성적소수자들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위와 같은 다양한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커밍아웃 하면서 지내왔다. 성적소수자 인권 운동이 태동하기 전에도 수많은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은 내쫓기고 두들겨 맞아가면서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커밍아웃 - 당시에 '커밍아웃' 이라는 말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다 하더라도 - 했고, 상대의 혐오스런 반응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사랑을 고백했다. 성적소수자들은 왜 남들과 나는 같지 않을까, 나는 정말 비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지독한 자기 혐오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활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두 레즈비언이 게이들과 함께 초동회를 만들었다가 곧 초동회의 해산을 겪고 레즈비언의 독자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도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 (및 여성성적소수자) 의 존재를 가시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커밍아웃이었다. 96년 '송지나의 취재 파일' 을 통해 레즈비언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한국 레즈비언의 대사회적 커밍아웃의 포문을 연 이후 레스보스의 윤김명우 사장을 비롯하여 수 많은 여성성적소수자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하고 있고 성적소수자 인권 단체의 활동가들도 대중 강연 사업, 타 영역의 인권 단체들과의 연대 등을 통해 매일 매일 커밍아웃 하며 지내고 있다. 개별 성적소수자들이 일상의 영역에서 나름의 커밍아웃을 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성적소수자에게 있어 아웃팅이란 아웃팅outing은 성적소수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혹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타인에 의해 성정체성이 폭로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성적소수자에게 매우 폭력적인 행위이며 범죄라고 볼 수 있다. 아웃팅이 범죄로써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경로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은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전무하니, 더 할 말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폭력이며 범죄인 아웃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웃팅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은 사실 커밍아웃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과 맞닿아 있다. 모든 이가 잠재적으로 이성애자라고 간주되며 이는 이성애만을 정상이라 여기는 사회의 뿌리 깊은 통념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바로 이 점이 '아웃팅' 이라는 개념이 나올수 있게끔 만드는 조건인 것이다. 이성애자가 아닌 어떤 성적소수자의 성정체성을 노출시키는 것이 그 당사자에 대한 폭력이 되는 건 이성애자 이외의 존재는 모두 싸그리 비정상으로 간주되며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웃팅 역시도 아주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다. 개인적 관계망 안에서 일어나는 아웃팅에서부터 언론 매체 및 기관 그리고 국가에 의해 일어나는 아웃팅까지 아웃팅이 발생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정이 없다. 고의적으로 타인의 성정체성을 까발리는 아웃팅은 사후에 성적소수자 당사자가 겪을 피해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매우 극악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성적소수자 본인에게 위해를 가할 목적이 없이 정말 실수로 저지른 아웃팅 - 당사자의 성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를 무심코 흘린다던가 해서 발생하는 등의 아웃팅 - 이라하더라도 그것은 폭력적인 행위이다. 한 순간의 부주의함이라고 변명하기에는 그렇듯 사소해 보이는 부주의함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폭로당한 성적소수자 개인에게 미칠 피해가 거의 그 사람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래 집단으로부터의 소외, 교육 기회의 박탈, 직장으로부터의 해고, 가족으로부터의 배척 등 한 개인의 삶을 이루는 총체적인 영역에 걸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웃팅이다. 일례로,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라도 성정체성이 드러날 여지가 있는 경우 성정체성과 무관한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조차 신고하지 못하는 성적소수자들이 많은 것도, 그 특정 피해에 대해 구제받고자 하는 희망보다 성정체성의 노출을 염려하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만이라도 잊지 말도록 하자. 우선적으로, 누군가 내게 커밍아웃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성정체성을 아무에게나 말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멋대로 짐작하고 온 데 떠들고 다니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극도로 조심해도 지나침이 없는 게 바로 아웃팅이다. 내가 알고 있는 타인의 성정체성에 대해서는, 본인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서는 언제 어디서도 말해서는 안된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만 그나마 성적소수자의 안전을 기할 수 있다는 게, 새삼 한국 성적소수자들의 현실을 상기시켜, 괴로워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적소수자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하며, 성적소수자들의 친구들은 성적소수자인 자기 친구들을 지켜주어야만 한다. 성적소수자에 대해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는 게 이놈의 세상이라는 걸 매 순간 잊지 말도록 하자. 나가며: 커밍아웃 할 권리, 아웃팅 당하지 않을 권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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