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곽영남씨 여동생 남순(69·오른쪽)씨가 22일 저녁 광주광역시에 있는 아들 집에서 오빠 경록(75)씨와 만났다. 가족을 찾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군 위안부라는 민족의 아픈 상처를 세심하게 보듬는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광주/정대하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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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찾은 중국 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퍼온이 보충] 곽영남(79·〈한겨레〉 23일치 8면)씨는 과연 한국에 올 수 있을까
곽씨의 한국 가족들을 처음 찾아낸 문화방송 〈!느낌표〉의 ‘아시아!아시아!’팀은 이미 곽씨의 여권을 만들고 출입국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에 들어갔다.
‘아시아…’팀은 법무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상봉 성사 가능성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 3월 말 정도는 돼야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아시아…’팀의 상봉 성공률이 100%에 이른다는 점은 일단 ‘파란불’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지난해 인도의 가족들을 데려오기 바로 전 한국에서 운명을 달리한 이주노동자 라나 뿐이다. 제작진은 6월에 상봉에 실패한 미얀마인 산나잉도 반년 뒤 성사키겠다는 약속을 12월에 지켰다.
그럼 ‘아시아…’팀은 어떻게 한국 가족들을 찾았을까
곽영남씨의 한국 가족들을 찾아달라고 한국정신대연구소가 ‘아시아…’팀에 부탁해온 때는 지난달 중순. 제작진은 할머니가 기억하는 고향 주소와 형제자매들의 이름을 갖고 바쁜 와중에도 한국족보협회와 전남 담양군에 있는 면사무소 등을 통해 수소문했다. 하지만 실패는 계속됐다.
결국 이 자료에 근접한 인물들 40여명의 명단을 손에 넣은 제작진은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곽영남씨의 동생 경록(75)씨가 첫 통화대상이었으나 처음에는 “모른다”고만 해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해서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어 아버지, 여동생 이름을 통해 상당수 사실이 맞다고 확인한 것이 지난 20일이다. 그러고선 22일 조연출을 맡고 있는 이상헌 피디가 한국정신대연구소 관계자들과 함께 광주에 내려가 최종 확인작업을 거쳤다.
‘아시아…’의 김선혜 작가는 “처음 전화를 통해 확인할 때 곽 할머니가 60년 전의 일을 기억하는 것과 한국에 있는 분들의 60년 전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것에 떨리고, 눈물이 날 뻔했다”며 “옆에 있던 다른 작가들도 같이 눈시울이 젖어왔다”고 전했다.
그동안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이어 카레이스키까지 상봉을 주선해온 ‘아시아!아시아!’의 이번 선행은 공익을 염두에 두고 한 우물을 파면서 쌓인 경험이 큰 힘이 됐다. 물론 ‘아시아…’팀이 기본적으로는 프로그램 소재가 되기 때문에 열심히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들의 노력은 박수받아 충분할 듯하다. 왜냐면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자국민들의 상처를 끌어안는 데 국가가 그만큼 열심히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한겨레. 편집 2004.02.23(월)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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